기아 PV5가 2026 BBC 탑기어 올해의 패밀리카와 인터내셔널 밴 오브 더 이어를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저도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밴이 패밀리카라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차를 들여다보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기아 PV5 더블 크라운 수상,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인터내셔널 밴 오브 더 이어(International Van of the Year)는 1992년에 시작된 상입니다. 여기서 인터내셔널 밴 오브 더 이어란 유럽 각국의 전문 자동차 기자 26명이 실용성, 가성비, 운용 경제성을 종합 평가해 상용차 중 최고를 선정하는 상으로, 업계에서는 흔히 "상용차 오스카상"이라고 부릅니다. 33년 역사 동안 비유럽 브랜드가 이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26명의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PV5를 선택했다는 점이 저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통상 이런 어워드는 취향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만장일치라는 결과는 단순히 "괜찮은 차"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번 경쟁 후보만 봐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 도요타 프로에이스 맥스
- 르노 마스터 신형
- 벤츠 이스프린터
- 포드 트랜싯 커넥트
- 포드 이트랜짓
이 중에서 PV5가 1위를 차지한 이유로 심사위원단은 혁신적인 모듈러 플랫폼 설계, 1회 충전 406km 주행 가능한 항속 거리, 급속 충전 지원, 그리고 환경 친화성을 꼽았습니다. 카 오브 더 이어(Car of the Year)와 달리 상용차 어워드는 감성이나 디자인보다 실무 활용도와 총 소유 비용이 판단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이 상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 판매량과도 바로 연결됩니다.
기아 PV5 모듈러 설계가 만든 진짜 실용성
PV5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듈러 아키텍처(Modular Architecture)입니다. 모듈러 아키텍처란 차량의 각 구성 요소를 독립된 모듈 단위로 설계해, 필요에 따라 조합하거나 교체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레고 블록처럼 뒷부분의 차체를 용도에 맞게 바꿔 끼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살펴보면서 가장 눈길이 갔던 건 사실 화려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외장 패널 처리 방식이었습니다. 도장 처리가 아닌 소재 자체 컬러의 플라스틱 패널로 외장을 구성하고, 각 파트를 완전히 분리 가능한 단위로 나눠 놓았습니다. 스크래치가 생기면 해당 패널 하나만 교체하면 그만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오래 생각이 멈췄습니다. 국내에서 상용차 운용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품 수급 문제로 고생하시는지 직간접적으로 들어왔거든요. 차종은 다양해졌는데 정작 부품은 없어서 사고 난 차를 몇 달씩 못 고치는 경우도 있고, 수리비가 찻값 절반을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차에 이런 공용 파트 설계가 적용된다면 유지 비용 자체가 달라질 텐데, PV5는 이미 그 방향으로 가 있습니다.
전기 파워트레인(Electric Powertrain)도 이 실용성을 한층 높여줍니다. 전기 파워트레인이란 내연기관 없이 전기 모터와 배터리 시스템으로 구동력을 만들어내는 동력 계통을 의미합니다. 엔진룸 구조 제약이 없으니 실내 공간 설계에서 자유도가 훨씬 높아지고, 특히 바닥을 완전히 평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공간 활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가전제품 같다'는 조롱이 칭찬이 된 순간
이번 탑기어 어워드에는 재미있는 맥락이 있습니다. 오래전 탑기어의 제레미 클락슨은 현대 기아 차량을 두고 "This is just white goods"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white goods란 냉장고, 세탁기처럼 흰색 케이스를 쓰는 생활 가전제품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으로, 클락슨은 이를 통해 "영혼 없는 이동 도구"라는 조롱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기아가 들고 나온 게 뭡니까. 네모 반듯하고, 실용적이고, 도구처럼 쓸 수 있는 차입니다. 아예 작정하고 가전 같은 차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 탑기어가 "압도적인 공간 활용성과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승리"라고 극찬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꽤 통쾌했습니다.
탑기어는 PV5를 두고 "밴의 실용성과 가족 모두를 위한 라운지 같은 편안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차"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차 안에 들어가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겠더군요. 머리 공간이 넉넉하고, 전동 슬라이딩 도어가 개방감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운전석 주변으로 수납공간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배치돼 있습니다. 대시보드 아래, 센터 콘솔 옆, 도어 포켓까지 스마트폰이나 소지품을 수시로 꺼내 쓰기 편한 위치에 자리 잡혀 있는 게 사소하지만 실제 운전에서 굉장히 차이를 만드는 부분입니다.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수준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NVH란 차량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 진동, 불쾌한 충격감의 정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상용차일수록 이 수치가 높아 장거리 운전 피로를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PV5는 전기 구동 특성 덕분에 엔진 진동 자체가 없고, 주행 중 정숙성이 같은 크기의 내연기관 밴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기아 PV5 패밀리카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제가 직접 느낀 건, PV5는 "차박이나 캠핑하는 사람을 위한 차"라는 좁은 정의를 훌쩍 넘어선다는 점입니다. 바닥이 완전히 평평한 구조, 천장까지 여유 있는 실내 높이, 필요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는 시트 배열. 이 조합은 유럽처럼 실용성을 먼저 따지는 시장에서는 더더욱 강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 전기차 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2024년 기준 유럽 전기 상용차 시장은 전년 대비 약 15% 성장했으며, 특히 중소형 전기 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출처: 유럽자동차공업협회 ACEA). PV5가 진입하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높은 차체 구조상 급격한 차선 변경이나 고속 코너링 상황에서는 무게중심이 낮은 승용 SUV 대비 차체 롤(Roll), 즉 차가 옆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패밀리카로서의 공간감은 탁월하지만, 운동 성능면에서는 여전히 상용 플랫폼 특성을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습니다. 또 혼자 도심을 이동하는 용도로는 이 차체 크기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국내 보급 측면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 일정이 최대 걸림돌입니다. 현재 백오더가 꽉 찬 상태에서 보조금 시기도 엇갈리다 보니, 국내에서 실제 수령까지는 2026년 여름 이후를 예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보조금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출처: 환경부 전기차 보조금 안내).
패밀리카의 기준이 세단에서 SUV로, SUV에서 MPV로 이동해 온 흐름을 PV5는 한 번 더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더블 크라운 수상은 그 방향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시장이 실제로 원하는 것임을 확인해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SUV의 주행 감각을 여전히 선호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가 구매 기준이 되는 사람이 늘수록 PV5 같은 방향의 차들은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에서 이미 증명됐고, 이제 그 물결이 국내로 넘어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