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허머 EV (미국 감성, 존재감, 전기차 유지비)

by lineup 2026. 5. 22.

주차장에서 이 차를 처음 마주쳤을 때 반사적으로 걸음이 멈췄습니다. 전폭 2.2m, 차고는 버스 운전석과 눈높이가 맞을 만큼 높고, 옆에 세워진 다른 차들이 갑자기 장난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GMC 허머 EV가 국내에 정식 출시되면서 직접 살펴볼 기회가 생겼는데, "이런 차가 대한민국 도로에서 과연 현실적일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허머 EV, 예전 허머와는 다르다는데, 실제로 달라졌을까

일반적으로 허머 하면 연비 최악, 승차감 투박, 유지비 폭탄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허머 EV를 직접 살펴보니 그 인식이 상당 부분 흔들렸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배터리 스펙입니다. 이 차에는 얼티엄(Ultium) 배터리가 탑재되어 있는데, 용량이 168.2kWh에서 최대 212kWh에 달합니다. 여기서 kWh(킬로와트시)란 배터리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숫자가 클수록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차체 무게가 4톤을 훌쩍 넘는데도 주행 가능 거리가 512km라는 수치는 단순히 "많이 담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배터리 효율 설계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기 구동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바뀐 또 다른 부분은 자동차세입니다. 기존 허머처럼 대배기량 내연기관이라면 연간 자동차세가 150만 원을 훌쩍 넘겠지만, 전기차로 분류되면 연간 1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유류비 대신 전기 충전비를 내는 것까지 고려하면 차량 가격 대비 유지비 부담은 이전 세대 허머와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입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절반의 이야기입니다. 4톤이 넘는 차체가 지속적으로 타이어와 브레이크에 가하는 하중은 일반 전기차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소모품 교체 주기가 빨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전용 타이어 규격이 워낙 특수하다 보니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은 장기 운용 데이터가 쌓여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머 EV 2X 트림의 핵심 제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배터리 용량: 168.2~212kWh (얼티엄 리튬 이온)
  • 주행 가능 거리: 512km (복합 기준)
  • 구동 시스템: 800V 듀얼 모터 사방구동(AWD), 578마력
  • 최고 속도: 170km/h (타이어 한계로 전자 제한)
  • 차체 중량: 약 4.2톤 / 전폭: 2.2m
  • 최대 견인 능력: 4.5톤

크랩워크, 슈퍼크루즈, 개방감 — 존재감의 실체

허머 EV를 단순한 대형 전기 SUV로 보면 이 차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제가 직접 살펴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크랩워크(Crab Walk) 기능이었습니다. 크랩워크란 전륜과 후륜이 같은 방향으로 조향되어 차체가 사선으로, 마치 게처럼 대각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쉽게 말해 좁은 공간에서 차 전체를 비스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인데, 4.2톤짜리 거대한 차가 주차장 한복판에서 게걸음을 치는 장면은 어지간한 자동차 영상보다 임팩트가 강했습니다.

킹크랩(King Crab) 모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후륜 조향각을 극단적으로 꺾어 차체가 제자리에서 거의 뱅글뱅글 회전에 가깝게 돌아가는 기능인데, 전장이 5m를 넘는 차가 이 회전 반경을 만들어낸다는 게 직접 보기 전까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회전 반경이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반자율주행 기술인 슈퍼크루즈(Super Cruise)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슈퍼크루즈란 정밀 지도 데이터(HD Map)와 라이다 기반 도로 인식을 결합하여,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도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한 핸즈프리 운전 보조 시스템입니다. 버스 전용 차로나 공사 구간을 자동으로 인식해 해당 차선을 피하거나 속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전폭 2.2m짜리 차가 차선 중앙을 정확히 유지하며 달리는 모습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루프 패널과 드롭 글라스를 동시에 열었을 때의 개방감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차는 B필러나 루프 보강재 때문에 개방감이 제한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탑승 위치에서는 보강대가 시야에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오픈카와 거의 다를 게 없는 개방감이 나왔고, 거기에 보스(Bose) 14채널 스피커로 음악까지 틀면 이건 차가 아니라 하나의 경험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어서스펜션(Air Suspension)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에어서스펜션이란 금속 스프링 대신 압축 공기를 이용한 에어 챔버로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 방식으로, 노면 상태나 주행 속도에 따라 차고(車高)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최대 149mm까지 차고가 올라가 오프로드 대응력을 높이고, 승하차 모드에서는 반대로 차체를 낮춰 탑승을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4톤짜리 차가 방지턱을 30km/h로 넘을 때 충격이 생각보다 부드럽게 걸러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대형 전기 SUV 수요는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2024년 기준 60만 대를 넘어섰으며, 고급 전기 SUV 세그먼트의 성장세가 특히 두드러진다고 밝혔습니다(출처: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대한민국 도로에서 허머 EV, 현실적인가

허머 EV가 국내에서 얼마나 실용적일지는 솔직히 따져봐야 합니다. 제가 살펴보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건 "이 차, 우리 동네 주차장에 들어가긴 할까?"라는 현실적인 걱정이었습니다.

전폭 2.2m라는 수치는 국내 대부분의 주차 구획(표준 2.5m)에서 좌우 여유가 각각 15cm 남짓밖에 안 된다는 뜻입니다. 크랩워크로 회전 반경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해도 물리적인 차체 크기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골목길이 많거나 지하 주차장이 협소한 도심 환경에서는 운전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SUV는 "존재감을 위해 실용성을 포기한 차"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허머 EV가 꼭 그런 차는 아니라고 봅니다. 2열 레그룸과 헤드룸이 충분히 확보되고, 에어서스펜션 덕분에 패밀리카로 써도 승차감이 버틸 만하다는 점, 순정 티맵과 안드로이드 오토·애플 카플레이가 모두 지원된다는 점은 분명히 일상적인 사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흔적입니다.

다만 가격 대비 가치를 따질 때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시 가격이 2억 중반대인 이 차의 중고차 가치 유지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희소성과 개성이 강한 차일수록 트렌드가 바뀌면 시세 하락폭도 클 수 있다는 점은 장기 보유를 고려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변수입니다. 미국 소비자 조사 기관인 J.D. Power에 따르면 전기 픽업 및 대형 전기 SUV 세그먼트는 브랜드 충성도와 희소성에 따라 잔존 가치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출처: J.D. Power).

결국 허머 EV는 효율을 따지는 사람보다 "이 차를 타는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는 사람을 위한 차입니다. 저는 이 차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2억 중반 가격대에서 이 수준의 존재감과 기능, 그리고 전기차 특유의 낮은 유지비를 동시에 제공하는 경쟁 차량은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GMC 전시장에서 직접 시승해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타보시길 권합니다. 도로에서 모두가 고개를 돌리는 그 경험이, 이 차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OrDTKEYNWk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